소통공간

해시드 흑백요리사부터 저스트 메이크업까지···29년차 예능PD, 여전히 ‘감다살’인 비결

해시드 JTBC <싱어게인>(2020),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2024), 그리고 쿠팡플레이 <저스트 메이크업>(2025).
콘텐츠 제작사 SLL(에스엘엘중앙) 산하 ‘스튜디오슬램’이 2020년 창립 이후 선보인 경연 프로그램이다. 앞의 두 프로그램이 유구한 음악과 요리 경연을 새롭게 변주한 것이었다면, 화장을 심사대에 올린 경연 프로그램은 <저스트 메이크업>이 ‘세계 최초’다.
지난 7일 최종화(10회)가 공개된 <저스트 메이크업>은 높은 국내 화제성은 물론, 싱가포르·필리핀 등 7개국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아마존프라임의 시청 수 톱10에 들며 반향을 일으켰다. 스튜디오슬램을 새로운 서바이벌 명가라고 할 만하다.
“(<저스트 메이크업>은) 슬램의 정체성을 담아 만든 서바이벌이예요. 경연 프로그램을 만드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잘 만들어보자 싶었죠. <싱어게인> 녹화를 가도 다들 ‘대표님이 하신 거냐’ 물어보더라고요. 화제성을 체감합니다.”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지난 20일 경향신문과 만난 윤현준 스튜디오슬램 대표가 말했다. 책임 프로듀서(CP)로서 세 프로그램을 모두 기획한 그에게 ‘슬램다움’을 물었다.
① 뻔하지 않을 것
29년 차 예능 PD인 윤 대표의 제1원칙은 “지금 남들이 하고 있거나 했던 것을 지양하는 것”이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질 때, 한 장르에 집중하기보다 ‘무명’ 가수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싱어게인>을 만들었다. <흑백요리사>를 내놓았을 때는 “요리 프로그램이 시들한 때였고 코로나 이후 요식업계가 침체한 상황”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저스트 메이크업>도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다가 나온 기획이었다. 공동 연출을 맡은 심우진 PD가 “메이크업 서바이벌을 해보고 싶다”고 할 때, 윤 대표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전문가들을 만나서 일단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지를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메이크업의 잘함과 못함을 말할 수 있냐’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너무나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의견을 믿고 해보자고 했습니다.”
② 출연자·업계를 존중할 것
윤 대표가 만드는 경연 프로그램에는 소위 ‘악마의 편집’이 없다. 최후의 1인만이 상금을 가져가는 것은 같지만, 출연자들은 서로의 노래·음식·메이크업에 진심으로 감탄한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작품을 헐뜯기보다 의도를 알아봐 주고, 때론 존경을 표한다.
“다른 서바이벌에 비해 ‘착한 맛’이라는 말을 듣죠. 그런데 참가자들은 주인공이잖아요. 그분들을 존중하지 않고 어떻게 서바이벌을 만들죠?” 윤 대표가 말했다. 그는 “누군가 탈락하는 서바이벌 자체가 잔인하지 않냐”며 “다른 걸 첨가하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업계에서 인정받으면서도 시청자에게 심사평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심사위원단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다. <저스트 메이크업>의 정샘물, 이사배, 서옥, 이진수 심사위원은 그 기준에 부합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심사위원 수를 ‘짝수’로 두는 것이다. 윤 대표는 “심사위원이 다섯 명이면 승패는 무조건 갈리지만, ‘3대2에서 3표를 얻은 사람이 정말 이긴 걸까’ 싶었다. 2대2, 1대1이 나오더라도 토론을 해서 승패를 정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③ 기억에 남는 ○○○을 남길 것
<저스트 메이크업>은 라운드마다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며 화제를 모았다. ‘1대1 미러전’이라는 이름의 2라운드에서는 얼굴이 똑닮은 쌍둥이 15쌍이 줄지어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얼굴이 도화지인 메이크업 경연에서 일란성 쌍둥이 모델이라니, 이보다 공정할 수 있을까. STAYC(스테이씨)와 TWS(투어스)의 무대 화장으로 팀 대결을 하는 3라운드에서는 메이크업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전광판이 ‘세로 직캠’처럼 다인원 멤버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비췄다.
메이크업 화장대 60개가 늘어선 장면은 40개의 조리대가 설치된 초대형 스튜디오를 선보인 <흑백요리사>를 떠올리게 했다. 윤 대표는 “무대 뒤 숨겨진 공간에서 이뤄지던 메이크업을 무대 위로 올리는 것이니 멋있길 바랐다”며 “‘내 화장대가 이렇게 밖으로 나와 있구나’라는 걸 본 참가자들의 감정까지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싱어게인>에서 참가자를 숫자와 ‘나는 ○○○ 가수’라는 직접 채운 수식어로만, <흑백요리사>에서 ‘흑수저’ 요리사들을 별명으로 지칭했던 것처럼 <저스트 메이크업>의 도전자들은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렸다. 이런 ‘무명’의 연출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
“저는 역설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름을 알려주면 더 기억을 못 할 거로 생각해요. 별명으로 부르면 오히려 찾아보는 효과도 있거든요.”
<흑백요리사>의 ‘요리하는 돌아이(윤남노),’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등의 별칭이 아직도 셰프들의 이름처럼 쓰이듯 ‘파리금손(김민),’ ‘손테일(손주희)’ 등 이들의 메이크업 특색을 살린 별명이 오히려 개개인을 기억하기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
④ 의사소통은 활발히
기성 방송국 CP가 관리자에 가깝다면, 윤 대표는 CP와 연출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1997년 KBS에 입사한 그가 연출·기획한 프로그램은 2000년대 한국 예능 프로그램사를 아우른다. KBS에서는 <해피투게더>, <상상더하기> 등을 연출했고 2011년 JTBC로 이적해서는 <신화방송>, <투 유 프로젝트-슈가맨>, <효리네 민박>, <크라임씬> 등을 런칭했다.
윤 대표가 이직을 선택한 순간들은 현장 연출보다 관리 일을 맡게 될 것 같은 기점들이었다. 그는 “예능 PD는 경험이 쌓일수록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판단이 빠르고 정확해진다”고 했다. 대표이자 CP이면서도 그가 연출을 맡은 PD들과 계속 소통하고, 현장을 매번 찾는 이유다. 그는 “요즘 (예능 업계는) 실패하면 다시 프로그램을 도전하기가 어렵다. 그 실패를 줄여주는 일이 제 역할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5월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흑백요리사>가 예능 최초로 방송부문 대상을 받았을 때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고 한다. 윤 대표가 일을 시작한 1997년, 시청률 50%가 넘는 드라마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은 ‘잘 나가지 못했었다’. 그는 “예능을 드라마만큼 돈 되게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상을 받을 때 문득 ‘이제 예능도 대단해졌구나’ 싶었다”고 했다.
“힘이 닿는 한 현장에 남고 싶다”는 게 윤 대표의 바람이다. 그는 JTBC에서 시즌1부터 연출한 넷플릭스 <크라임씬 제로>를 최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PD 7명으로 시작했던 스튜디오슬램은 이제 연출만 40명으로 몸집이 커졌다. 다음 달에는 <흑백요리사> 시즌2가 공개되고, 내년을 목표로는 ‘판매왕을 가리는 서바이벌’ <셀 미 더 쇼>(티빙)를 기획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다른 걸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트렌드를 잘 읽기도 해야 하지만, 이끌기도 해야 하겠죠. 나아갈 수 있는 체력이 생겼으니 자만하지 않고 뚜벅뚜벅하다 보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부가 24일 발표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령의 취지는 교섭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하되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적극 활용해 하청 노조의 독자적인 교섭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교섭창구단일화’와 ‘교섭단위 분리’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에 따라 노사간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렸다. 노동계는 정부가 창구단일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 하청노조 교섭권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반면 경영계는 교섭단위 분리가 창구단일화 제도를 흔드는 개정안이라고 맞섰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시행령을 설명하면서 “현행 제도 내에서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해 원·하청 노사의 실질적인 교섭을 촉진하려는 것”이라며 “노사자치의 원칙을 최대한 살려 하청노조의 실질적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법 29조의2는 복수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교섭대표노조 한 곳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 조항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창구단일화를 우선 적용하되 하청노조가 개별 교섭을 요구하면 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원청노조와 하청노조는 양측이 공동교섭을 요청하지 않는 한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개정안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려는 노란봉투법 입법 취지를 무력화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원청의 책임 회피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하고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사실상 막는 조치”라며 “교섭 과정에서 절차적 장벽을 높여 노동자가 지방·중앙노동위원회와 법원을 반복적으로 거쳐야 하는 상황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개별 교섭을 보장하면 하청노조가 자연스럽게 큰 교섭 단위로 모이게 될 텐데, 정부가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하면서 교섭까지의 과정이 오히려 길고 복잡해졌다고 민주노총은 지적했다. 또 사용자가 노동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이 시행령을 따를지도 불확실하다고 우려한다.
한국노총도 “원·하청 교섭에도 창구단일화를 적용해 개별 하청노조의 교섭 진입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청노조는 회사 내부 단일화 절차에 더해 다시 원청 교섭을 위한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해 교섭 진입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교섭의제별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정부에 권한이 집중돼 행정부 성향에 따라 노사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시행령에 절차를 세세히 규정할수록 사용자가 소송을 택할 여지를 키운다며, 시행령 개정보다 행정지도 중심의 지원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영계는 개정안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던 원청 노사 간 교섭도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무분별하게 교섭단위 분리 결정 기준을 확대할 경우 15년간 유지된 원청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가 형해화될 수 있다”며 “산업현장의 막대한 혼란이 우려되는 만큼 무분별하게 교섭단위 분리 결정기준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관계자는 “교섭단위 분리제도 강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하청노조의 분리 요구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라며 ”원청 노조가 무분별하게 분리를 요구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현행 법체계 안에서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사업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안으로 보인다”며 “하청노조 교섭을 처음 인정하는 법이 시행되는 만큼 현장에 적용해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은 내년 1월 5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확정된다. 노동부는 이 기간 노사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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