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폰테크 [신문 1면 사진들] “꺼져라” 고성 앞에 고개 숙여 인사, 텅 빈 야당 의석 가리키며 “좀 허전하군요”…대통령의 시정…
- 이길중
- 25-11-10
- 22 회
■ 한·중 정상, 선물 나누며 함박웃음 (11월 3일)
지난 1일 이재명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11년 만에 국빈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최악으로 치달은 한·중 관계를 복원·발전시키기 위한 기틀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3일자 1면 사진은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 후 친교의 시간에 선물을 나누며 함박웃음을 짓는 사진입니다. ‘관계 복원’이라는 의미를 담기엔 회담 전 악수나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사진보다 두 정상의 활짝 웃는 표정이 더 적절했습니다. 특히 이 장면은 많이 언급됐습니다. 시 주석이 중국 샤오미 스마트폰을 선물하자, 이 대통령이 “통신 보안은 잘 됩니까?”라고 웃으며 말했고, 시 주석은 “백도어가 있는지 확인해 보시라”고 답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대체로 무표정인 시 주석이 방한 일정을 통틀어 공개된 사진 중에 가장 크게 웃는 사진이었습니다.
■ 한·미 국방부 장관, 8년 만에 함께 판문점 JSA 방문 (11월 4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했습니다. 한·미 국방 장관이 JSA를 동시에 방문한 것은 2017년 10월 이후 약 8년 만입니다. 양국 장관은 비무장지대(DMZ) 최북단 경계초소인 오울렛초소(OP)와 판문점 회담장 등을 둘러봤습니다. 안 장관은 JSA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헤그세스 장관이) 한·미가 공고한 연합방위태세를 구축하면서 작전하고 있는 것에 상당히 만족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다음날 열리는 제57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참석을 위해 이날 방한했습니다.
1면 사진은 한·미 국방 장관이 판문점 회담장 앞에서 북측 판문각을 배경을 악수하는 모습입니다. 두 장관의 JSA 방문 일정을 보자마자 떠올린 1면 사진입니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가지 않는 이상, 이 사진만 한 게 없습니다. 정해진 포토라인에 선듯 북측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JSA 방문 기념사진의 공식입니다. 아쉬운 건 국방부가 제공한 사진이 달랑 한 장이었다는 겁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회담장 내부를 둘러보는 장면이나, 판문각 쪽의 북한군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 박수 치는 여당, 자리 비운 야당 (11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안”이라며 “내년은 AI 시대를 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역사적 출발점”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은 728조원 규모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통과를 위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날 국민의힘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해 대통령 시정연설에 불참했습니다.
1면 사진 이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모습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장 통로까지 나와 박수치며 대통령을 맞이하고, 그 뒤로 보이는 국민의힘 의석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날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고 상복시위를 벌이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는 이 대통령을 향해 “꺼져라” “범죄자” 등의 거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시정연설을 시작하며 텅 빈 야당 의석을 가리키며 “좀 허전하군요”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 미 뉴욕시장 ‘새 역사’가 된 맘다니 (11월 6일)
“통념대로라면 나는 완벽한 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나이를 더 먹으려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젊다. 또 무슬림이며 민주사회주의자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이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란 맘다니 미국 민주당 후보(34)가 4일(현지시간) 미 최대 도시이자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의 시장에 당선됐습니다. 맘다니는 1898년 이후 최연소 뉴욕시장이자 최초의 무슬림, 남아시아계(인도), 아프리카(우간다) 태생 뉴욕시장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부자 증세, 저소득층 복지 확대 등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운 그가 당선된 것에 대해,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에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1면 사진은 만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이 당선 축하행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입니다. 만다니 당선인은 지난해 10월 출마를 선언하고 올해 1월만 해도 지지율이 1%에 불과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맘다니의 급격한 부상에 “그의 성공 궤적은 놀라움 그 자체이며 메가와트급 인재의 탄생”이라면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사들을 구슬리고 매료했으며 무장해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공격받기 쉬운 소수자성을 극복하며 선거에서 미 정계 거물을 꺾고 승리한 매력적인 서사가 1면 사진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 주저앉은 60m 높이 타워 (11월 7일)
울산의 화력발전소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대형 보일러 타워가 무너지면서 작업에 투입된 노동자 7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6일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분쯤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보일러 타워가 무너졌습니다. “사람이 깔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현장에 있던 노동자 9명 중 매몰되지 않은 2명을 바로 구조했습니다. 나머지 7명은 붕괴된 타워 구조물에 매몰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울산화력발전소에서 60m 높이 보일러 타워가 주저앉은 모습이 7일자 1면 사진입니다. 사고의 규모는 무너진 구조물의 크기보다는 사상자의 수에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사진회의 직전 ‘7명 매몰’이라는 속보를 보고도 판단이 바로 서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미룬 채 미리 챙겨둔 대통령실 국정감사와 온실가스 감축 관련 사진만 챙겼습니다. 회의에서는 울산 매몰 사고 사진을 1면 사진으로 결정했습니다.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의 참사들에 익숙해서인지, 큰 사고에 대한 감각과 판단도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1면 사진이 결정되고서야 후배 사진기자를 울산으로 급파했습니다.
[주간경향] 캄보디아에 갔던 청년들이 누군가는 유해로, 누군가는 범죄 피의자로 돌아왔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이도 많을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이 1000~2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개개인이 가해자냐, 피해자냐를 따지는 것은 이 문제를 개인화하는 측면이 있다. 보다 중요한 건 적잖은 수의 한국 청년이 캄보디아행을 선택한 이유를 찾는 일일 것이다. 캄보디아는 범행 장소였을 뿐, 그 원인은 한국에 있다.
간단한 답은 ‘돈’이다. 상당수 청년이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온라인 구인 광고를 보고, 지인의 권유를 받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왜, 어떤 이유로 돈이 필요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캄보디아에 간 청년 다수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많은 돈이 급하게 필요했다.
캄보디아에 다녀온 이들의 판결문에는 몇 가지 실마리가 있다. 대구지방법원에서 최근 징역형을 받은 청년 A씨는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연락을 받고 친구 3명을 데리고 출국했다. 판결문을 보면 A씨는 도박 자금이 필요해 캄보디아로 향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징역 4년형을 받은 B씨가 캄보디아로 향한 이유도 도박이었다. B씨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캄보디아로 출국해 주식리딩방 사기 조직의 계좌를 관리했다.
캄보디아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 중에는 인터넷 불법 도박이 있다. 20대 중반에 인터넷 불법 도박을 접하고 이른바 ‘불법 일’에도 빠삭해진 C씨(35)는 “캄보디아 간 애들은 거의 다 도박을 한다고 보면 된다. 도박하는 사람의 특징은 (도박할 때) 수중에 10원도 안 남긴다. 사채는 빌려 썼고, 돈은 벌어야 하고, 제일 편한 게 불법이다”라고 했다. 중학교 때 시작한 도박을 끊지 못하고 있는 D씨(28)는 지난 3월 캄보디아행을 목전에 뒀다. 그는 “그때 도박으로 몇천만원 뒤지고(잃고) ‘X 됐다’ 싶어서 ‘하데스카페(해외 고수익 일자리 불법 중계 플랫폼)’ 가서 글들을 찾아봤다. 한 달에 몇천만원씩 준다길래 그쪽이랑 통화도 했는데 잘 꼬신다. 1주일에 한 번 성 접대도 하고, 맨날 노래방 가고, 회사 분위기 좋고, 호텔처럼 1인 1실에…. 믿었다. 힘드니까 믿어지더라”라고 했다. D씨는 캄보디아행과 불법 통장 대여를 저울질하다 통장 대여를 택했고,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도박에 빠진 몇몇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는 인터넷 불법 도박이 청소년 사이에서 만연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도박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3%였다(2024년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 단순 계산하면 해당 나이대 학생 17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경찰청은 1년간 인터넷 불법 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9971명을 검거했는데, 절반가량인 4715명은 19세 미만 청소년이었다. 적발된 청소년 중에는 9세 아동이 2명 포함돼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도박을 접한 D씨가 캄보디아행을 고민했던 것처럼, 이 청소년 중 누군가는 또다시 범죄조직의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도박 중독 치료와 예방 교육 일변도의 정책 개입 속에서 도박장이 돼가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고교 2학년인 E씨(17)는 한 달 넘게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다. 도박을 끊기 위해서다. 처음 도박을 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와 불법 OTT 사이트에서 영화를 보는데, 사이트 한쪽의 불법 도박 광고 배너가 반짝였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이내 재미를 느꼈고, 굴레에 빠졌다. 그는 “도파민이 엄청나다. 도박하기 전엔 축구나 ‘롤(LOL)’ 같은 게임을 좋아했다. 도박을 하고 나서 도박이 제일 재밌는 게임이 됐다”고 말했다. 만원이 순식간에 8만~9만원이 되는 걸 보면서 판돈이 커졌다. 100만~200만원을 따기도 했지만, 하루에 200만원을 잃기도 했다. 돈을 따면 다시 판돈으로 걸고, 돈을 잃으면 주위에서 빌렸다. 결국 빚만 늘었다.
원래라면 고교 3학년인 F씨(18)는 지난해 학교를 그만뒀다. 현재는 “도박을 끊었다”고 했다. 그가 도박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도박하는 친구가 순식간에 50만원을 버는 걸 봤다.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돈을 보내고 친구 계정으로 도박을 했다. 5만원을 걸었는데, 25만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때 도파민이 너무 터져 계속했던 것 같다. 돈 걸고 하다 보니 게임보다 훨씬 재밌었다. 한 번에 600만원도 따봤는데 500만원을 바로 다 잃었다”고 했다. F씨도 결국 빚을 내며 게임을 했다. 가장 많았을 때는 250만원까지 빚을 졌다.
청소년들 사이에 도박이 유행처럼 번진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도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씨의 첫 도박 사이트 가입은 손쉽게 이뤄졌다. 사이트 측에서 승인 전화가 왔지만, 미성년자인지는 묻지도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일부 도박 사이트들은 성인 인증 절차를 강화했지만, 규모가 작은 곳은 미성년자라도 쉽게 가입할 수 있다. F씨는 “한 반에 30명 중 10명은 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친구 따라 하기도 하고 돈이 필요해서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도 애들끼리 모여서 바카라(순식간에 승부가 나는 카드 게임으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임 중 하나)를 했다”고 말했다.
둘째, 도박을 계속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교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 간의 고리대가 대표적이다. E씨는 “학교 친구들 수십명에게 빌렸다.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절반 정도는 도박하는 친구들이 빌려줬고, 도박을 안 해도 빌려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도박하는 친구일수록 고리대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E씨는 보통 10만원을 1주일 뒤 13만원으로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렸다. 연 이자율로 치면 1000%가 넘는다. 원금 40만원이 80만원까지 불어난 일도 있다.
못 갚으면 지옥이 벌어진다. E씨는 돈을 빌린 친구 2명에게 “개맞은 적도 있다”고 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다시 도박하는 이유가 된다.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용돈 외에 뚜렷한 수입도 없는 청소년에게 돈 나올 곳은 도박밖에 없다. 청소년이 도박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E씨는 “어느 순간부터는 갚기 위해 (도박을) 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로 들어갔다. 진짜 지옥이다. 빚이 감당이 안 돼서 불법 사금융을 알아본 적도 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빚이 많아지면 정신을 좀먹는다. 불안감을 엄청 느낀다”고 했다. 결국 채권자 친구들은 수차례 E씨의 부모에게 빚 독촉 전화를 했다.
어떤 교실에선 도박이 주된 이야깃거리가 된다. 대학생 G씨(19)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 도박을 했다. 그가 다닌 중학교는 남학생의 80% 정도, 고등학교는 남학생 70% 정도가 도박을 했다. 그는 “학교가 카지노가 됐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자주 하는 도박 중 하나는 스포츠 경기 결과를 맞히는 불법 토토다.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해외 축구가 도박과 결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군가는 평소라면 관심도 없는 축구팀의 부상자 명단까지 검색하며 밤샘 분석을 했고, 어떤 아이들은 교실에서 경기 결과를 두고 열띤 토론을 했다. G씨는 “다들 도박하면서 놀고, 돈 없으면 서로 돈 빌려주고, 어디 걸어서 얼마 땄다며 도박 얘기를 했다. 차라리 혼자 외딴 섬에 있었으면 덜했을 텐데, 학교만 가면 다들 도박 얘기를 하니 조금 더 쉽게 도박을 하게 되는 게 있었다. 오히려 도박을 안 하면 이야기에 잘 못 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쉽게 도박에 빠지는 셋째는 일부 불법 사이트들이 학교를 적극 공략하기 때문이다. 사이트 입장에서 청소년들은 저가에 부릴 수 있는 마케팅·홍보 인력이다. 일부 도박 사이트들은 신규 가입 회원들에게 도박 몇 판을 할 수 있는 ‘꽁포인트’를 제공한다. 새로 가입할 때 추천인을 쓰도록 하는데 추천을 받은 사람에게도 포인트가 지급된다. 이 장치들은 학생들이 매일 오프라인에서 대면하는 학교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학생들은 자발적인 도박 사이트 홍보원이 된다. F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 추천인 코드로 가입 한 번 해줘라’ 이런 일 많았다. 나도 해본 적 있다. 1명 받으면 5만원 정도 생기는데 4~5명한테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친구를 추천하기 위해 새로 유입된 학생들은 다시 도박에 빠진다. E씨는 온라인상에서도 자발적 홍보원 노릇을 했다. E씨는 “사이트마다 돌아다니면서 ‘이 링크를 타고 가입해줘라’라는 식으로 홍보 글을 써본 적 있다”고 했다.
홍보의 정점에는 총판이 있다. 총판이란 도박 사이트의 회원을 모집하고 대가를 받는 이들을 말하는데 청소년이 총판이 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성인인 D씨는 청소년이 오히려 총판을 하기에 유리하다고 했다. 그는 “성인은 사람 모집하기가 힘들다. (사람 많이 만나는) 업소 웨이터들이 하는 건 봤다. 오히려 학생 때 총판 더 잘할 수 있다. 학교는 공동 집합 장소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대학생 G씨는 중3 때부터 고2 때까지 총판을 했다. 아는 형들이 한 도박 사이트의 총판이었는데 “네 친구들 추천받아서 돈 받아 가라”며 총판이 되길 권유했다. 총판의 수익구조는 다단계 사기와 유사하다. 총판이 영입한 사람이 도박을 하면, 그 사람이 쓴 돈 일부가 총판에 떨어진다. 많이 초대할수록, 초대한 사람이 많은 돈을 쓸수록 돈이 된다. 총판이 되고 G씨는 50~60명을 모집했다. G씨는 “학교에서 쉽게 모집할 수 있었다. 한 달에 600만~700만원 벌었다”고 했다.
총판은 목돈도 빌려줄 수 있는 학교 안의 은행이 된다. G씨도 더러 돈을 빌려줬다. 그는 “10만원 빌려주고 일주일 안에 13만원으로 갚으라고 한다. 제가 총판으로 있는 사이트에서 도박하는 애가 10만원 빌려달라고 하면 더 잘 빌려줬다. 걔가 도박한 돈으로 내가 수수료도 받고 이자도 받으니까”라고 했다. 제때 못 갚으면 원금 10만원을 50만원으로 돌려받기도 하고,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돈을 못 갚는 이들에게 영업을 시키는 총판도 있었다. G씨는 “못 갚겠으면 친구 10명 데려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인터넷에서 홍보 글 써서 사람을 모으라는 경우도 있다”라고 했다. 몸으로 때우게 된 이들은 쉴 새 없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도박 사이트 홍보글을 쓰고 인증숏을 찍어 총판의 검사를 맡는다. 도박 사이트 입장에서는 청소년 몇몇을 총판으로 둠으로써 영업망·홍보망을 구축하는 효과를 얻는 셈이다.
도박은 도박을 한 사람만 파멸시키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의 입구가 되기도 한다. H씨의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도박을 했다. H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중3 무렵이다. 동물을 좋아하던 내성적인 아이가 집안의 폐물 등 돈 되는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수습할 수가 없었다. 도박 빚을 지고 갚지 못한 아들은 처음엔 집안 물건을 훔치다, 친구들 돈을 뺏고 나중엔 중고거래 사기를 쳤다. 현재 아들은 고3인데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아들의 도박 이후 H씨는 “삶이 다 파괴됐다”고 했다. 아들 문제로 부부간 자주 다투면서 이혼을 했고, 사고 치는 아들을 쫓아다니느라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의 도박 빚을 갚는 데 1억2000만원을 썼고, 아들의 범죄 합의금으로 1억8000만원을 썼다. H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미치겠더라. 애는 도박해서 잃은 돈을 다시 따서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더라. 중독이 그런 것 아니냐. 경찰에 (도박 사이트) 신고도 여러 번 해봤다. 온라인 도박은 못 잡는다고만 하더라”고 했다.
E씨도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주운 신용카드로 도박을 했다. 그는 “저는 모든 일탈이 도박으로부터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인드 자체가 이상해졌다. ‘알바 왜 하지? 버튼 몇 번 누르고 운 좋으면 돈 생기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충동적인 게 커지고. 캄보디아 고수익 알바 광고에 충분히 빠질 수 있다. 도박하면 정상적인 판단이 안 된다. 눈이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몇 번이나 도박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매번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의지 자체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 명의 계좌를 없애고, 가족 명의 카드를 받아 비밀번호도 모르고 생활하려고 한다. 본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변환경을 바꿔야 한다. 요즘엔 처음부터 (폐쇄병동에) 입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급전이 필요했던 D씨는 캄보디아에 가는 대신 범죄조직에 통장을 빌려줬다. 그 일로 현재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중3 때부터 10년 넘게 도박을 끊지 못하고 있는 그는 대학도 나왔고, 멀쩡한 회사도 다녀봤다. 그런데 도박을 끊지 못했고 회사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요즘 그가 하는 일은 이른바 ‘통장 협박’이다. 여러 사이트에 ‘도박으로 잃은 돈을 복구해주겠다’는 글을 남기고, 누군가 연락이 오면 일부러 도박 사이트에 돈을 입금한다. 그리고는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로 신고해 계좌를 동결시킨다. 돈줄은 도박 사이트의 생명줄이기에 일부는 신고를 철회하는 대가로 합의금을 주기도 한다. 이중 일부가 D씨 몫이다. 도박으로 돈을 잃은 절박한 이들이 그를 찾고, 그는 공갈로 도박 사이트의 돈을 뜯는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시간 대부분을 도박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설명하는 데 썼다. 그런 그가 도박을 못 끊는 건 아이러니다. D씨는 “몇 번 끊으려고 했다. 그게 안 돼서 몇 번 죽고 싶은 거 이겨내면서 산다. 핑계일 수 있지만 너무 (도박을) 접하기가 쉽다. (도박을 끊는 건) 도박 사이트가 없어지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10년 전 고등학교 때랑 비교하면 사이트가 많으면 많아졌지 줄어들진 않았다”고 했다.
도박에 잠식된 학교를 숙주 삼아 범죄 생태계는 몸집을 불리고 있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 개개인을, 일확천금을 노리고 캄보디아에 간 범죄 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이제라도 청소년 도박을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숙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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